金城湯池(금성탕지)
金城湯池(금성탕지)
- 방비가 아주 견고한 성 -
[뜻풀이]
매우 견고한 성이나 요해지(要害地)를 말한다. 약하여 금탕(金湯)이라고도 하는데, 탕지(湯池 )는 열탕(熱湯)이 끓는 해자(垓字: 성 둘레에 판 도랑)를 말한다. 즉 성을 탄탄히 쌓고 성 둘레에 못을 파놓은 난공불낙(難攻不落)의 성을 이르는 말이다.
동의어로 금성철벽(金城鐵壁), 석성십인(石城十仞), 탕지백보(湯池百步)가 있는데 서적(徐積)의 화예복시(和倪復詩)에는 「金城不可破(금성불가파) 鐵壁不可奪(철벽불가탈)」이라는 글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외에 鐵瓮城(철옹성), 鐵瓮山城(철옹산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用例(용례)]
김 사장이 기세가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쳐있는 것을 지나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모든 일 처리가 완전무결하고 깔끔하여 ‘금성탕지(金城湯池)’처럼 견고하게 매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나 실패하지 않는다.
[字解(자해) 및 字源(자원)]
金: ①쇠 금 ②금 금 ③금빛 금 ④금나라 금 ⑤다물 금 / ⑥성 김 // 形聲(형성). 土(흙 토) + ∨ + 今(이제 금). '今(금)'은 '含(함)'과 통하여 '포함하다'의 뜻. '土(토)'는 흙의 뜻. '土(토)' 속에 좌우로 쓰이는 '∨'는 금속이 땅속에 있는 모양을 본뜸. 흙 속에 포함된 것. '쇠'의 뜻을 나타냄.
城: ①재 성 ②성 쌓을 성 ③성 성 // 形聲(형성). ‘土(흙 토)’ + ‘成(이룰 성)’ ‘成(성)’은 ‘안정하다’는 뜻. ‘土(토)’를 金文(금문)과 籒文(주문)에서는, 망루의 象形(상형)으로 이룸. 망루가 있고 흙을 쌓아 올려 담을 이루며, 사람을 들여놓아 살게 하여 안정시키는 ‘성’의 뜻을 나타냄.
湯: ①끓인 물 탕 ②온천 탕 ③목욕간 탕 ④끓일 탕 ⑤탕약 탕 ⑥사람 이름 탕 ⑦방탕할 탕 ⑧성 탕 / ⑨물 세차게 흐를 상 / ⑩해돋이 양 // 形聲(형성). ‘氵(물 수)’ + ‘昜(볕 양)’ ‘昜(양)’은 뻗쳐 오르다의 뜻. 자유로이 뛰어오르는 ‘끓는 물’의 뜻을 나타냄.
池: ①못 지 ②해자 지(성 밖을 둘러 판 못) ③베풀 지 ④성 지 /形聲(형성). 氵(水: 물 수) + ‘也(어조사 야) ‘. 也(야)’는 ‘꾸불꾸불하다는 뜻. 꾸불꾸불한 모양의 물웅덩이, 못의 뜻을 나타냄.
[出典(출전)]
원전(原典)은 《한서(漢書)》 「무신군(武信君) 괴통전(蒯通傳)」이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원전 210년에 진시황(秦始皇)이 사망하자, 봉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전국(戰國)시대 강대국들의 유신(遺臣)들이 재빨리 반진(反秦)의 군사를 일으켜 군수(郡守)나 현장(縣長) • 현령(縣令)을 죽이고 성시를 점령하는 일들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 무렵에 무신(武臣)이라는 사람도 전의 조(趙) 나라(지금의 산서성)를 평정하고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일컬었다. 그래서 많은 지방의 수령방백(守令方伯)들이 공포심에서 보신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후일 「축 록(逐 鹿)」의 일화를 남긴 책사 괴통(蒯通)이 이것을 보고 곧 망양(茫陽)의 현령인 서공(徐公)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헌책(獻策)하였다.
「제가 현령님을 대신하여 무신군(武信君)을 만나 이렇게 말씀드리겠아오이다. 즉『전쟁에 이겨서 땅을 취하고, 성시(城市)를 공략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소인의 계략을 채용하여 싸우지 않고 땅과 성시를 손아귀에 넣는 방법을 취하면 어떻겠소이까.』하고 말씀드릴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무신군(武信君)은 반드시 그건 어떤 방법이냐고 물을 것이외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아오이다.
『만일 무신군께서 망양(茫陽)을 공략하여 현령인 서공이 항복했을 때, 그분을 박대하신다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귀영화를 바라는 다른 모든 수령방백도 모처럼 항복하였는데도 서공과 같이 푸대접을 받거나 학대된다면 차라리 싸워서 죽느니만 도 못한다.
그러니 군비를 더욱 충실히 하고 수비를 튼튼히 하여 성을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철옹성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신군께서 쳐들어가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귀공께서 몇 개 성지를 공략하는 것은 모르지만 전국을 평정하여 정복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충고드리겠습니다만 망양의 현령이 항복하면 그를 푸대접하지 말고 관대하게 맞아들여 전관예우를 하시면서 서공(徐公)을 각 고을의 현령 • 현장에게 파견하여 무신군에게 항복하면 나처럼 이렇게 전관예우를 받으니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고 권유케 합니다.
그러면 모두 싸우지 않고 항복할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千里)의 저쪽 끝까지 문제없이 평정하는 방법일 것입니다』하고 설득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무신군도 틀림없이 제 말을 받아들일 것이고, 또 현령님의 생명 재산과 지위도 그대로 보전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서공도 기뻐하여 괴통(蒯通)을 곧 무신군에게 보내어 항복의 뜻을 표하고 교환조건으로 전관예우를 요망했다.
괴통을 통하여 서공의 항복을 기꺼이 받아들인 무신군은 그대로 약속을 이행했다. 이리하여 무신군은 지금의 화북(華北)지방 30여 개 고을을 싸우지 않고 평정했다.
김춘원 기자 kimcw98@silvernetnews.com